평가와 직업 생태계
평가가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박요철 씨가 쓴
글을 읽고 페북에 적어 올렸던
글이다. 거친 생각이 그대로 드러나는 부끄러운 글이지만 일순간 일었던 격정을 간직하고 싶어서 기록으로 남긴다.
회식한 날 저녁, 동료와 나누던 대화의 여운을 미처 다스리지 못한 탓인지 격정과 비약이 부끄러울 만치 넘치는 글이라 다음 날
오후에 아래처럼 고쳐 올렸다.
평가는 교육의 핵심이다. 학교와 사회의 평가가 직업 생태계의 구조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다양을 지탱하지 못하는 평가는 직업
생태계를 무너뜨린다. 단종 직렬의 무한 경쟁 교육이 난세의 답이라는 믿음이 여전히 우리 교육과 평가 체계를 지배한다. 경쟁력 있는 소수 엘리트가
집단의 존속을 이끌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사실이 아니다. 집단의 존속은 엘리트가 아니라 다양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진화는 목적을 가진 힘이 아니다. 강하니까 살아남은 것도 살아남아서 강해진 것도 아니다. 우리는 단지 어쩌다 보니 지금 여기에 있게 된
것뿐이다. 다양만이 존속의 확률을 높인다. 선별 교육은 진화의 법칙에 역행한다. 직업도 마찬가지다. 다양을 유지하는 것이 유일한 길이다. 단종
직렬의 경쟁으로 단절된 집단이 아니라, 다양한 개인의 성취가 서로 연결되고 공생하는 집단만이 직업 생태계의 건강함을 지킬 수 있다. 교육을
바꾸겠다면 평가 방식을 바꾸어야 하는 이유다.
평가 방법과 사회 보상이 다양을 지탱하지 못하면 직업 생태계가 무너집니다.
각 분야의 뛰어난 엘리트 그룹이 저스티스 리그처럼 세상을 구원하듯 이끌고 간다는 착각이, 그래서 직렬과 단종의 엘리트 교육이 난세의 답이라는 환각이, 지금 현재도 교육과 산업의 담론을 지배합니다. 그런 몰상식과 비과학에 기댄 평가 체계를 종교스럽게 옹호하는 정도가 대중의 미신을 넘어 정책과 제도로 스며들고, 도리어 갈수록 더욱 굳건해지는 것을 보면 한 세기를 훌쩍 넘어 성숙에 이른 진화에 대한 이해가 아직도 상식에 이르지 못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람은 언제쯤 사실을 상식 수준의 눈으로도 직시하게 되는 날이 올까요?
강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 살아남았기 때문에 강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진화의 역사를 공부하며 충분히 배우고 익혔습니다. 단종 직렬의 무한 경쟁이 집단의 성장과 존속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이제 모두가 압니다. 더불어, 성장과 존속도 단기를 살다 갈 인류의 착시에 가깝다는 사실을, 공허하지만 가끔은 돌이켜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저 우연히 어쩌다 보니, 지금 잠시 의식을 갖고 머무르고 있는 것일 뿐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인류가 강했기 때문에, 살아남았기 때문에,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6차 대멸종을 이끌며, 닭뼈로 지층을 덮고 있는 현 ‘인류세’의 주연이 된 것이 아닙니다.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게 틀림없을, 분야별 어벤저스를 길러낼 수 있도록 선별 교육하고 그들에게 사회적 특혜를 안겨 줘서라도 집단의 영화를 보장받을 수 있는 미래의 먹거리를 타 집단에게 기어코 뺏기지 않겠다는 생각을 고스란히 투영한, 이 황당한 평가 방식을 이제라도 그만두어야 하는 까닭은, 근거 없이 인류의 선한 본성에 기대어 서열도 경쟁도 없이 모두가 모두를 아끼고 사랑하는 아름답고 화목한 이상 사회를 꿈꾸어 보자는 게 아니라 (긴 생명의 역사에서 무척 공허한 논의이기는 해도 그나마 잠시라도 덜 고통스럽게) 인류가 세대를 이어갈 수 있는 생존의 원리, 곧 잠시 동안이라도 살아남을 가능성을 높여주는 유일한 방책이, 다양을 무너뜨리지 않는 데 있다는 것을 이제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